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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 성격 상담소 (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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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 성격 상담소 (2)

shahan2 2022. 6. 8.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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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격을 분류하는 것에 꽤 관심이 많다. MBTI를 맹신하는 정도이다. 
분류된 성격을 보고 사람을 사귈 때 참고하고 있지만,
대게 처음 정한 노선을 그대로 따르게 된다. 

이 책에서는 성격을 분류해서 '일정한 정리함'에 넣어버리면
'다른 선반'은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나의 경우처럼 말이다. 한 개인의 독자성을 무시하고 마는 것이다.
이 책의 또 다른 키워드는 "개인의 독자성"이다. 
분류는 하되 개개인의 특성 또한 다르다는 것이다.
나처럼 성격을 분리하고는 이내 그것을 일반화시켜 독자성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책의 두 번째 리뷰에서는 여러 성격의 유형 중 인상 깊었던 부분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허영심, 불안, 비관적인 성격 그리고 슬픔에 관한 것이다. 

 

1. 허영심이 강한 성격

허영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형편에 안 맞는 명품백 등을 사서 자랑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나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 여겼는데 그것은 순전히 나의 착각이었다.

생각해보면, 물질을 자랑하는 사람은 그것의 결핍으로 오히려 자랑하는 것이라고들 한다.

허영심이라는 단어를 물질적인 부분과 별개로 생각해 본다면 바로 납득이 되었다. 

나는 언제나 이상이 높아 현실과의 괴리를 느낀다. 그래서 남이 부럽고 자신에게는 항상 불만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현실과의 접점을 잃어버려, 남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만을 생각한다고 한다. 
본연의 자기 모습이 아닌, 이상적인 쪽에 초점을 맞춘 채 살아가는 것이다. 

 

자기가 실제로 뛰어나지 못함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남의 가치를 떨어뜨림으로써 상대적으로
자기 가치를 높이고, 그럼으로써 우월감을 얻고자 한다.
아들러는 이런 경향을 '가치 저감 경향'이라고 표현했다. p.25


허영심이 있는 사람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실패를 남의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또 다른 가능성에 매달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된다.
이랬더라면 됐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 예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해 줄지만 관심이 있다.  

이번에 깨달은 것이지만 나는 허영심이 꽤 많은 사람이었다. 나의 이런 면을 이미 공감하고 있으면서도
물질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춰 나 자신은 허영심이 없는 사람으로 포장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2. 쉽게 불안해지는 성격 

 

나의 성격을 대표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하면 '불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매사에 불안해서요'라는 말을 달고 사는 정도이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할 때도 사용하지만,
무언가 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할 때 불안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하곤 했다. 
이 책에서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가장 먼저 과제에 몰두하지 않겠다고 결심해버리기 때문에 그 뒤로는 안 될 이유만 열거하고,
결국 "하지만..."이라며 핑계를 댄 다음 그 상태에서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할까 말까 하는 마음이 반반인 것이 아니고, 아예 처음부터 '안 하겠다'라고 결심한 셈이다. p.63

 

아들러는 인간의 불안을 공동체의 유대에 의해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이어져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으라고 한다.
개인의 불안은 공동체와 연관되어 있다. 이 점이 굉장히 새롭게 느껴졌다. 

 

3. 비관적인 성격

 

불안한 나의 성격은 이어 비관적인 발언을 하기에 이른다.
불안에 견딜 수 없어 그것이 생각한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 예언이라도 하는 것 같다.

나 자신을 비극의 주인공처럼 바라보는 것이 그것이다. 

 

실패를 자만하는 경향까지 엿보이는 이런 사람을 가리켜  아들러는 '허영심'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뒤틀린 허영심이라고도 볼 수도 있다. 본래는 실제보다 크게 보이고 싶어 하는 것이 허영심인데,
이런 경우에는 불행하다는 사실 또는 불운한 자신을 사건의 중심으로 여기고 싶어 한다는 의미에서
허영심이 있는 사람인 셈이다.    p122

 
또 한 번 허영심이라는 단어가 새롭게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불안도가 높아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성격으로 내 스스로를 단정 지었는데,
어쩌면 부끄럽고 불안해 주목받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실은 간절한 주목을 바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러는 이에 가끔은 다른 사람에게 기대어 조금 마음을 편히 가지도록 조언한다.
비관적인 성격 역시 혼자가 아닌 인간관계 속에서 극복할 수 있다는 반증인 것이다.

 

4. 슬픔에 대하여 

 

슬퍼하는 감정에 대해 좋고 나쁨을 말할 수 있을까. 슬픔은 그저 슬픔이다라고만 생각했다. 

아들러는 슬픔도 폭발의 하나로 보고 있었다. 화든 슬픔이든 상대역이 있다고 말한다.

슬퍼하는 사람을 못 본 척 내버려 둘수는 없으니, 상대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그러면 슬퍼하는 사람은 그 덕분에 우월감을 느낄 수 있다. 주위 사람들은 슬퍼하는 사람을 종기 다루듯
조심스럽게 대할 수밖에 없으니 그런 대우를 강요하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이렇게 슬픔이라는 감정을 이용해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서려고 한다. p. 152

 

지나친 비약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어떤 상실로 인한 강력한 슬픔을 제외하고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무언가 사달라 떼쓰는 아이의 경우를 상상해 봐도 알 수 있다. 

슬픔을 이용하는 경우에 있어서 더욱 그렇다. 

문제는 슬픔으로 타인을 봉사시키는 사람은 일방적으로 봉사만 시키고, 자기는 주지 않는다.
"주는 사람을 오로지 주는 역할로만 고정시킨다. "

받거나 주기만 하는 고정된 관계는 지속될 수 없다. 그러므로 슬픔을 고정시켜서는 안 된다. 

 

위에서 언급한 여러 성격과 감정들의 공통점은 모두 상대역이 있다는 것이다.
화를 표출하고 싶은 상대가 있거나, 상대보다 우위에 있고 싶은 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고난 성격이라고 느껴졌던 이러한 감정들은 의외로 상대와 함께 있을 때 바꿀 수 있다.
내가 선택한 감정은 결국 타인과 함께 일어나기 때문이다. 


 

언니와 저는 성격이 달라요라고 말하는 위의 글처럼 이미 동생은 언니와 다른 성격을 선택했다. 

이미 자신은 언니와 다른 성격을 택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답정너! 인 것이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는 하지만 결국에 나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성격이니
내가 스스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이번엔 성격을 바꿀 용기를 주는 것이다. 

 

그간 나는 나의 성격을 단언하고 살았던 것 같다. 나는 이런 타입이야. 그래서 반대부류의 사람들과는
잘 교류하지 않았다. 그 덕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단해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내 성격의 면면들을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성격의 개념 자체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실제의 나보다 나아 보이길 바라거나, 누군가 나를 가련히 봐주길 바라며 타인의 눈을 의식하며 살았다.
내 자신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를 비관하고 남을 부러워했다.
조금은 뼈아픈 사실 확인도 하게 되었지만 덕분에 바꿀 수 있는 용기가 생기기도 했다.

무엇보다 신선했던 것은 그간 알고 있던 단어의 이미지들이
새롭게 소개되었다는 점이다.
쾌활함이라는 단어를 좋은 이미지로 알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우월성 추구에서 오는 쾌활함 "이라는
식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당연히 쾌활함이란 불안이나 비관적인 표현보다는 좋은 이미지겠지만 이렇듯 모든 성격에는
명암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선택하는 이면의 나를 깨닫고 조금은 다른 선택을 하는 시간을 맞이하고 싶다.

새로운 발견이 제법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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