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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의 구제 (감상평)- 히가시노 게이고

shahan2 2023. 3. 17.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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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의 구제 (감상평)- 히가시노 게이고

 

 

이 소설에서 범인은 초반에 이미 드러난다.

‘죽어줘야’ 겠다는 경고의 말을 시작으로 소설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미 드러난 범인이

어떻게 살인을 완성했을까 하는 방식이 사건의 핵심일 거라 생각했다.

이야기의 흐름이 그렇게 흘러갔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지만,

소설을 모두 읽고 느낀 점은 살인의 방법보다는 살인을 계획한 시점에 더 참신함을 느꼈다.

소위말해, 친구의 애인을 가로채 결혼까지 한 아야네가 자신 역시 버림받을 것을 대비했고,

버림받게 된 순간 가차 없이 남자를 죽이기로 계획한 점이 놀라웠다.

바람둥이 남자가 오직 자신에게만은 정착할 것이라는 꿈을 아야네 또한 꾸었기 때문일까?

 

내가 소설에서 감탄한 시점은 아야네가 독살을 시킨 방법이  드러난 장면인데,

결혼 생활을 하면서부터 그녀는 살인계획을 이미 실행해 두고,

언제든 그를 죽일 수 있는 준비를 해두고, 그녀가 원치 않는 시점에는 그가 죽을 수 없도록

끊임없이 그를 지켜보며 그의 죽음을 막고 지켜선, 그녀의 집요함이 더 놀라웠다.

이는 그녀의 마지막 고백을 통해 알 수 있었다.

 

p. 451-

준코에게 한 짓은 용서할 수 없지만, 자신에게 똑같은 짓만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이대로 지내도 좋았다.

아야네에게 결혼 생활이란 교수대에 오른 남편을 지속적으로 구제하는 나날인 셈이었다.

 

“성녀의 구제”라는 제목 속에 드러난 구제라 함은 바로 이것이었다.

아내는 잠시라도 눈을 떼면 언제라도 이루어질 수 있는 남편의 죽음을 끊임없이 지켜냄으로

그를 구제하며 그의 목숨 줄을 쥐고 있다는 환희를 느끼며 살아왔던 것이다.

아마 이 사실을 알았다면 요시다카 역시 그녀에게 자신의 욕구만을 채우지는 않았을 테지만,

아야네 역시 이 사실이 드러난다면 요시다카를 잃기 때문에 완전히 그를 소유할 수 있는

그녀만의 방법을 택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남편을 잃은 아야네를 보고 마음이 흔들린 경찰 구사나기가 그녀를 처음 만난 순간을 표현한 것이다. 

 

p. 293- 무언가를 각오하고 지금 이 순간만을 있는 힘을 다해 살려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절박함에 압도되어 마음이 끌리곤 했다.

 

학창 시절 모두가 만류하는 죽어가는 고양이를 끝까지 돌보았던 구사나기가 아야네에게 느낀 감정은

어쩌면 사랑보다는 동정심이었을 수도 있으리라.

실제, 그녀는 남편의 사망소식을 알고 있었지만 아내로서, 그를 잃은 아픔을 모두에게 드러내도 되는

감정 선택이 쉬운 사람이었지만, 용의자와 범인의 사이를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절박함을

구사나기는 잘 포착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야네를 용의자에서 범인으로 만든 시점은 구사나기로부터 시작되었다.

모두가 아야네라는 용의자를 범인으로 의심하며 살인트릭에만 집중하고 있었을 때,

구사나기만 유일하게 그녀의 혐의를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주전자에 독을 넣어 요시다카를 살해할 수 있는, 아야네도 히로미도 아닌 제3의 인물을 쫓다 보니

준코를 만나게 되었고, 제3의 인물을 향한 구사나기의 수사의지가 준코와 아야네의 관계를 드러내었고,

준코의 자살의 동기 역시 아야네였음이 밝혀진 것이다.

또한, 고향에서 돌아온 아야네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태연하게 증거를 인멸하였음을 밝혀낸

증거물 역시 구사나기를 통해 얻을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 소설의 중심인물들이 자주 이러한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걸 볼 수 있다.

아야네에게 마음을 빼앗겨 그녀를 지키고자 수사한 구사나기 덕에 아야네는 범인이 되었고,

준코가 자살하며 남긴 아비산이 결국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를 독살당하게 만들었고,

준코의 애인과 사랑에 빠진 아야네는 자신이 행했던 방법 그대로 제자인 히로미에게 남편을 빼앗기게 되었다.

인과응보일까, 예견된 결말일까? 참으로 기묘하게 상황이 전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 요시다카가 얼마나 매력적인 인물일까 라는 상상의 즐거움도 느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아야네와 히로미 외에도 자살한 준코를 포함, 일전에 만난 여성들 역시

요시다카가 자신의 아이를 낳아줄 여자를 찾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설정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백야행, 환야 등에서 등장한 몇몇 신비스러운 주인공들을 떠올리게 했고,

 요시다카 역시 그런, 치명적인 인물이었음을 나타내 주었다.

비정상적인 이기심을 추구하는 요시다카를 사랑했기에, 아야네는 살인자가 되었고,

히로미는 불륜으로 갖게 된 아이의 미혼모가 되었고, 준코는 자살을 했다.

 

히가시노게이고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점은 소설 속 주인공에게는

늘 참신한 살인동기가 있다는 점이다.

범인인 아야네 역시 출산을 전제로 남편과 결혼했으니 합의하에 이혼할 상황이었음에도

그를 사랑하기에 그녀만의 방법으로 그를 소유하기 위해 그를 죽였다.

요시다카가 그토록 원하는 아이를 히로미가 가졌으니, 아야네는 그를 잃지 않으면서

그를 놓아줄 충분한 이유가 생긴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여러 소설들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천재물리학자는

이번 소설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갈릴레오 시리즈 4번째 작품이기 때문이다.

물리학자 유가와가 바로 그 존재인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시그니쳐 캐릭터와도 같은 그는

대게 형사의 친한 지인으로, 형사를 도와 자문하는 역할을 한다.

시그니쳐 캐릭터라고 하면 당연한 존재인데, 사실 그에 대한 정보가 많이 드러나지 않아서,

조금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과연 그 존재가 꼭 필요한 것이었나 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물론, 여형사의 말대로 동료 형사가 용의자에게 이성의 감정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수사상황을 의논할 사람이 왜 천재적인 외부인이어야 하는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서 경찰은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는 존재로 그려지는지 일종의 딴지를 걸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나 이번 소설도 긴장감 있는 진행과 결말이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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