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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한공부로그
롯본기 김교수 본문
제목: 롯폰기 김 교수
작가: 김 교수/ 페이지 224
일본어 공부를 하다 보면 일본문화에도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일본의 문화와 민족성을 모르고 일본어 공부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일본어의 기초를 다지는 수준일 때는 말 그대로 어학의 영역이었지만 간단한 문장을 읽을 수 있는 정도가 된 후에는 문화 이해는 필수이다. 나 역시도 그 단계에 다다를 무렵 그간 일본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실상이 아니라 이미지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흔히 일본 하면 떠오르는 상냥함, 청결함, 주변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약간의 개인적인 성향까지, 내 개인의 성향과 너무나 잘 맞는다고 믿어 왔던 것이 흔들림 없이 일본어를 공부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했다.
우연히 유튜브로 일본의 상황을 검색하다 알게된 유투버인 이 책의 작가는 미국유학생을 거쳐 일본에 거주하는 순수 한국인 교수님이다. 그래서인지 몇몇 영상들은 한국인 특유의 유머스러운 소개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고, 조금은 솔직하게 일본인의 모습을 소개해 줄 것이라고 생각해 영상에 이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은 기존 유투브 영상에서 소개된 내용을 책으로 정리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영상에서 보았던 내용을 책을 통해 복습하는 시간이 되었고, 덕분에 내용도 정확히 각인이 되었다. 영상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일본에 아무리 우호적인 한국인이라도 독도 문제만큼은 양보할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하고 작가가 소개한 타케시마의 의미를 알게 되면서 보다 더 긴장감을 느끼기도 했다. 본래 섬나라인 일본은 자국의 섬을 부를 때 "시마"라는 훈독을 사용하여 부른다. "島토”의 음독 발음은 외국의 섬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단어라고 한다. 하와이는 "하와이토"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익히 알고 있는 '타케시마'라는 단어의 발음은 시마 를 사용한다. 발음으로 이미 독도가 자국의 영토라는 의식을 내 배치고 있는 것이다. 자못 단어가 주는 힘을 무서울 정도로 느꼈다. 독도가 시마로 불려서는 안 된다.
부동산 매매를 하며 계약서를 꼼꼼히 읽는 일본인들의 모습에 지쳐 다시는 부동산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 작가의 예시가 소개되었다. 일본은 절차를 중시한다는 인상이 있는데, 짐작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에 정도가 지나치다는 게 작가의 이야기이다. 우리나라도 곳곳에 계약서가 있지만 계약서의 내용이나 보험의 약관 등을 읽을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방대한 양을 읽고 소화하기가 어려운 데다 불필요한 곳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의식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이러한 절차를 매우 중시해,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답답한 방식일 수밖에 없다. 나도 언젠가 일본 드라마를 보고 의아한 적이 있었다. 드라마 속의 부부가 이혼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는데, 이름을 쓰다 아내가 글자를 틀리자 몇 번이고 다시 인쇄해서 처음부터 양식을 써나가는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왜 저렇게 불필요한 곳에 시간을 들이는 걸까."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역시 절차를 중시하는 성향 때문인 것이었다.
다음은 '매뉴얼'에 대한 일본인들의 집착에 가까운 의존성에 관한 것이다. 우리나라 TV 프로에서 일본에 대한 소개를 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할 키워드로 "매뉴얼"을 꼽은 적이 있다. 무엇을 사든, 사용하든, 일본인은 그 사용방법, 매뉴얼을 꼭 읽는다고 한다. 메뉴얼을 잘 읽기 위한 메뉴얼에 관한 책이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절차를 따라야 하는 그들의 습성은 메뉴얼을 대하는 태도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는 회사생활에서 회의로 이어지고 사소한 절차를 모두 회의 안건에 넣어 회의를 반복하는 그들의 태도는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라는 일본인의 성향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계획적으로, 절차대로, 안정감 있는 업무 진행에는 능숙할지도 모르지만 즉흥적이고 갑작스러운 사태를 대처하는 것은 미숙하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인은 기계를 출시된 방법으로 만은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한 강사의 소개를 들으며 웃은 적이 있는데, 참으로 일본의 성향과는 대립되는 부분이었다. 이러한 성향 역시 참 멀고도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다른 일본인의 특성을 꼽는다면, 작가는 '세모'라고 말한다. 동그라미도 엑스도 아닌 중간인 세모이다. 일본인은 폐를 끼치고 싶어 하지도 않고 그래서 확실한 답변은 주지 않는다. 빨리 가부만 결정을 해달라는 질문에도 쉽게 답할 수 없는 것이 그들이다. 이 역시 자신의 한 마디로 인해 누구에게라도 폐를 끼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져야 하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이다. 그래서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는 마다한다. 승진도 원치 않는다. 개인이 독단적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이것이 일본인의 모습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실용적인 아이디어를 낸 저자에 대한 의견에는 모두 부정적인 반응이 돌아왔던 때를 회상하는 작가의 모습을 통해 일본 사내의 단적인 일면도 알 수 있었다.
이것에 대한 이유로 작가는 일본의 '와 문화' '사무라이 문화' '츠메루 문화'를 꼽고 있다. 이 키워드를 다른 말로 옮겨보면 '평화롭게 잘 지내야 한다 ' '그렇지 않으면 섬나라인 일본에서 사무라이의 위협을 받을지도 모른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서로 폐 끼치지 않고 빽빽하게 채워진 채 살아가야 한다'라는 결론을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작가 역시 이 표현을 하나의 이미지로 소개한다. 우리가 일본 하면 떠오르는 '벤토' 즉 도시락의 모습이다. 일본인의 모습은 도시락 같다고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민족성이 합쳐져 형상화할 수 있는 이미지가 도시락인 것이다. 예쁘고 다양하지만 그 예쁨을 유지하기 위해 도시락의 본질인 맛보다는 꾸미는데, 불필요할 정도로 공을 들인다든지, 한정된 공간에 많이 담기 위해서 빽빽하게 채워 넣고, 그 와중에 밥, 반찬 등의 서로의 영역도 침범할 수 않도록 차곡차곡 담아내야 하는 것이다. 일본의 도시락을 보고 있으면 이젠 일본인의 문화가 조금은 더 선명하게 보일 것만 같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잘 지내기 위해서는 모두가 지키도록 만들어 놓은 매뉴얼을 따르며 평화롭게 지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한 가지 재미있었던 부분은 일본의 욕은 우리나라만큼 다양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욕은 지역별로 다양해 언뜻 생각나는 것만으로도 꼽을 손이 모자라는데, 일본은 그렇지 않다는 배경에도 역시 위에 소개한 내용과 맥락을 같이 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참으로 언어에는 많은 문화가 들어있다.
일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작가의 경험담은 지극히 주관적일 수 있어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저 주변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일본인의 모습이 다소 냉소적으로 비쳤지만 어학을 배우는 만큼 그들의 중심관은 확실히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어학은 항상 그 문화와 함께 공부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어, 일본의 문화를 소개하는 책도 읽어본 적이 있다. 말 그대로 어떤 기념일이 있는지, 어떤 문화가 발달되어 있는지 등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정보의 나열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추석의 유래라든지, 추석 때 먹는 음식 , 전통 놀이 등이다. 글자 그대로 학습해야 하는 정보들이다. 하지만 이 책은 현재 일본 생활을 하는 작가의 경험담을 통해 일본인 그 근간인 민족성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미국 유학을 할 때는 자신감 넘쳤다는 이 책의 작가는 일본 생활을 하며 다소 어둡고 조용한 성향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뛰어난 개인의 역량보다는 눈에 띄지 않는 공동체 속 일원으로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성향과 이런 부분이 잘 맞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또 그 나름대로의 진통이 있는 모양이다. 가끔은 개인의 즉흥적인 아이디어가, 갑작스러운 대처방법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축하받을 수 있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일본은 다소 답답한 공간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통해 일본에 대한 환상은 깨졌지만, 일본인에 대한 이해도는 높아진 것 같다. 뭐든 그 사람의 행동에는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있으니까 말이다. 이유를 알게 된 이상 보다 유연하게 그들을 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이유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뿐해지기도 한다. 작가의 다음 행보인 굿바이 일본이라는 책도 출간되었다고 하던데, 그곳에서도 더 자세한 이유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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